[2020년 회고 ③ 일상의공론장팀] 변화는 혼자서 단숨에 만들 수 없으니까

빠띠
발행일 2021-02-23 조회수 58

여러분에게 2020년은 어떤 해였나요? 열이면 아홉 이상의 분이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었다’고 답하실 것 같은데요. 빠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는데요. 빠띠의 2020년 한 해를 돌아보았습니다.

[2020년 회고 ③ 일상의공론장팀] 변화는 혼자서 단숨에 만들 수 없으니까

시민참여를 넘어 시민이 직접 공론을 이끌어가는 시대

SNS 시대의 이슈는 금방 뜨거워지고 또 쉽게 식습니다. 포털 검색어 순위, 지금 주목받는 키워드나 해시태그, 좋아요 급상승 영상은 하루에도 수십번 변화하지요. 익명의 다수가 동시에 반응을 주고 받으며 이슈를 만들어내는 오늘의 미디어 환경에서, 디지털 컨텐츠 전략은 점점 더 짧고 자극적인 시청각 매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한편 기후위기 같이 장기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거시적인 문제들이 회자되는 횟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뜨거운 불판 같은 SNS 채널은 논란과 문제를 퍼뜨리기에는 최적화되어있지만, 뚝심있는 논의를 지속해 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듯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공론장 활동가들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한편 기록과 흔적이 남고 정보가 누적된다는 것도 온라인 공간의 특징입니다. 지금 SNS와 포털 사이트에 보이는 것은 금새 사라질 이슈지만 이용자가 목적에 따라 정보를 기록하고, 검색하고, 선별해서 맥락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오히려 누구나 참여해서 깊이 있는 논의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공론장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빠띠 공론장팀은 디지털 기술의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 온라인 공간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숙의해 나갈 수 있는 일상의 공론장으로 만들어나가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휘발되지 않는 논의의 공간을 원한다면, 빠띠 믹스

빠띠는 서울시와 파트너로 서울시민의 온라인 공론장 ‘민주주의 서울’을 만들고 오프라인 공론장과 병행하여 운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플랫폼은 '데모스X'(demosx.org)를 통해 오픈소스로 공개되었지요. 다른 기관이나 지자체, 공론장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활용할 수 있도록요. 빠띠가 만들어 내는 민주주의 기술은 빠띠의 소유, 빠띠의 독점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재를 지향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빠띠 공론장팀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공론장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 ‘빠띠 믹스’입니다.

빠띠 믹스 열린공론장

지금까지의 온라인 공론장 플랫폼은 주로 운영 기관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시민은 제안을 올려 공감과 동의를 얻는 단계까지만 가능했다면 작년 8월 공개되어 정식 런칭을 준비 중인 빠띠 믹스에서는 시민 개인이 직접 의제 제안부터 공론장 운영까지 실행하는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의제 그룹을 만들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을 열고,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제안, 투표를 진행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요. SNS나 댓글창은 발산의 기능에 집중하지만, 빠띠 믹스에는 다양한 생각을 발산하기 위한 제안 기능 뿐 아니라 수렴시키기 위한 투표 기능, 합리적 토론을 진행하기 위한 모임 기능이 있습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약 내가 사용하는 SNS에서 피드가 해당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직접 개입해서 큐레이션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또 안건을 정리해 투표를 열고, 함께 모여 대화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이벤트까지 열 수 있다면 어떨까요? 또 이 과정들이 기록으로 남는다면? 오늘은 어제를 잊어버린 하루가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되지 않을까요? 일상에서 합리적인 문제해결의 공간이 없어 답답했거나, SNS에 “집단적 독백”을 남기고 허무했던 경험이 있다면, 빠띠 믹스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가족부터 지구까지, 모든 단위에 필요한 공론장

새롭게 자리를 찾는 언어가 늘 그렇듯 ‘공론장’에 대해서도 동상이몽이 존재합니다. 학술적인 개념이었던 ‘공론장’은 지난 몇 년 간 좀 더 친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때론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단발성 행사로 오해되기도, 단순히 제안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 기능으로 취급받기도 하지요. 람시 활동가는 공론장을 “시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공적 공간”으로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는 한 번의 행사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과 같은 특정 영역에만 한정되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규모의 대화를 공론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공론장의 규모에 대한 질문에 단디 활동가는 “각각의 단위마다 자기 공론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람시 활동가가 잘 알려진 큰 공론장의 사례로 국민 다수가 첨예하게 반응하는 이슈를 위해 만들어졌던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를 언급하자 도란 활동가는 “집에서 매주 가족회의를 하는데, 이야기하고 토론해서 결정을 하는 공론장”이라며 자신의 사례를 더했습니다. 작은 모임부터 한 국가까지, 사람들이 모이면 공통의 이슈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공론장팀 멤버들은 다양한 단위에서 꾸준히,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일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실제로 공론장팀은 그간의 활동에 기반해 공론장의 범주를 세분화하고 그에 따라 활동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지난 해에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기관주도 공론장’ 뿐 아니라 시민이 이끌어가는 ‘시민주도 공론장’을 개념화하고, 그 안에서 ‘열린 공론장’, 또 그린뉴딜, 공공데이터, 대학 등록금 등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의견을 나누는 ‘작은 공론장’ 활동을 시도하기도 했지요.

서울시 사회적경제 시민참여플랫폼 세모워크숍

2020년 한 해동안 만난 파트너들도 다양했습니다. 민관 거버넌스 활성화를 필요로 하는 정부기관들과 협업할 때 공론장팀은 디지털 도구와 오프라인 교육 및 워크숍을 상황에 맞게 활용해 공론장 프로세스를 설계합니다. 플랫폼을 협업 단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기도 합니다.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경우 빠띠 믹스를 활용해 “서울사회적경제 시민참여플랫폼”을 만들고, 시민들과 사회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각각 의제제안 워크숍을 진행해 상호 협력가능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편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깊이 관계된 영등포구 수변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론장은 빠띠 믹스 플랫폼에서 그룹을 만들어 운영했고요.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좋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조건들은 같습니다. 소이 활동가와 제이 활동가는 “모두에게 정보가 열려있고 접근성이 보장”되며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강조합니다. 또 공론장은 실제 숙의가 진행되는 과정으로서 “한 번에 끝내는 끝장토론이 아니라 연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절차” 가 되어야 합니다. 플랫폼과 도구들은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되고요.

기관뿐 아니라 공론장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도 중요한 협업 파트너입니다. 재작년 말 동대문 마을 활동가 한 분이 빠띠의 ‘민주주의 서울’을 보고 마을 단위의 공론장을 만들어볼 수 없을지 물었고, 이는 정부 기관 뿐 아니라 시민 간 협력을 필요로 하는 민간에서도 공론장 플랫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대문 마을자치공론장 사례가 궁금하다면?) 마을활동가들과 함께 마을 주민자치공론장을 플랫폼을 구상해 본 경험은 빠띠 믹스 개발에도 반영되었고, 주민들과 동대문구에 적극 플랫폼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액션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제안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빠띠는 작은도서관 공론장, 마을 거버넌스 공론장 등 지역의 다양한 단위에서 빠띠 믹스를 활용한 민관협력 거버넌스 공론장을 시범운영 하게 되기도 했고요.

시민협력플랫폼 데모스X 운영 모델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

빠띠 공론장팀의 활동은 이렇게 다양한 파트너들을 만나면서 확장되어 왔습니다. 민관 협치를 지향했던 서울시와의 협업을 통해 시민이 제안하고 피드백까지 받는 공론장 ‘민주주의 서울’을 설계했듯, 개인부터 단체까지 다양한 단위에서 사용 가능한 유연한 공론장 플랫폼 ‘빠띠 믹스’를 개발 중인 지금도 새로운 협업 파트너들을 찾고 있습니다. 공론장이 점차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자원을 공익적으로 쓰고 싶은 기업이나, 내부 공론장을 필요로 하는 노동조합, 이해관계자들과 만나고 싶은 비영리 단체 등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공론장을 필요로 하는 곳들이 많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지난 해 시작한 ‘공론장 활동가 커뮤니티’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고요.

이처럼 아직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 시민협력 숙의 공론장을 만들어 나가는 공론장팀에는 “의지”와 “희망”이 있는 활동가들이 모여있지만 뜻밖에도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빠른 기술발전이나 불평등, 기후위기와 같이 비관적인 사회문제들을 선명히 바라보고 있는 편이지요. 하지만 만약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마이크를 모두의 것으로 돌려준다면, 그래서 사각지대의 개인도 안전하게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이 주어진다면, 마침내 시민들 스스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문제로 가득한 세상에서 누구나 더 쉽게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위해 활동하는 이유입니다. 변화는 함께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니까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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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희원 decembre.h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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