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 조직의 감정을 기록하다

빠띠
발행일 2019.10.20. 조회수 111

네오토피아 글로벌 해커톤 2017 참가 후기

2017년 가을, 한국의 직장인들이 또 하나의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넵병’입니다. 넵병은 직장인들이 ‘넵’이라는 말을 하루에 가장 많이 쓴다는 것에서 나온 말인데요. 직장인들이 넵을 다른 ‘네’들(넹, 넴, 넷)보다 많이 쓰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조직에서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감정은 조직에서 정말 그렇게 숨겨놓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감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

빠띠는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개인이 조직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감정을 자유롭게 말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양성을 보장하고, 누구나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민주적인 조직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감정은 조직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들여다보야 할 중요한 정보값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부정적 감정은 조직의 일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 같고요.

실제로 빠띠에서는 감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방법으로 ‘항해일지’라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서 활용왔는데요. 최근 7개국 10개 팀의 국내외 메이커, 데이터 전문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이 참여하여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한 데이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확장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보는 ‘네오토피아 글로벌 해커톤 2017’에 참가하여 지금까지 써온 항해일지를 바탕으로 어플리케이션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항해일지로 감정을 함께 돌아보기

이번 해커톤에서 빠띠가 만든 항해일지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기록할 수 있는 앱입니다.

일을 하다 느껴지는 감정들을 선택하여 입력하고, 이에 대한 코멘트를 기록합니다. 이렇게 각자 기록한 감정은 팀의 감정으로 아카이빙되어, 동료들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시각화되어 프로젝트 기간 동안 같은 팀이 느낀 감정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번 프로토타입에는 감정을 8가지로 분류하고 감정마다 색깔을 지정하여, 감정의 데이터 수를 색깔의 면적으로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니 빠띠가 어떤 감정에 머물렀는지, 또 어떻게 매월 그 감정이 변화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감정도 성과로 측정하기

이렇게 만들어진 항해일지를 통해, 개인은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들을 정리하고 스트레스 상황이나 업무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팀은 프로젝트의 결과에 팀원들의 감정 변화추이를 반영하여 성과를 측정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감정이 프로젝트의 부차적인 결과가 아니라, 측정될 수 있는 성과가 되는 것이죠.

빠띠 멤버들의 감정기록을 수집, 분류하고 시각화한 결과
빠띠 멤버들의 감정기록을 수집, 분류하고 시각화한 결과

항해일지를 만들며…

이번에 항해일지를 만들고,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빠띠팀 멤버들은 각자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이 그림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읽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기계가 읽은 감정을 사람들이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더 어렵다.”
“요즘 좀 지쳐있었다. 그런데 이전의 감정들을 보면서, 에너지가 많을 때의 나를 확인하고, 지금 힘을 내고 있는 멤버가 이전에 지쳤을 때가 있었다는 걸 확인한 것이 의미있었다. 나도 곧 그렇게 될테니까.”
“얼마나 많은 날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항해일지를 쓰면서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성과가 아니라 나의 감정들을.”

새로 들어온 멤버인 저는 항해일지를 만들면서 그동안 멤버들이 쌓아온 감정 기록을 보면서 조직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조직과 멤버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되었달까요. 자신이 어떤 일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꽤 솔직한 이야기에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앞으로 (이전 조직에서 있을 때보다) 감정을 더 풍부하고 솔직하게 기록해보고 싶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매일 오후 5시 30분이 되면 항해일지를 남겨보자는 알림이 옵니다
매일 오후 5시 30분이 되면 항해일지를 남겨보자는 알림이 옵니다

요즘 여러분은 일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잠시 나의 감정과 그 감정을 일으킨 일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좌) 해커톤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빠띠팀 / (우) 최종 발표회 모습
(좌) 해커톤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빠띠팀 / (우) 최종 발표회 모습

전시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

이번에 만든 항해일지는 아트센터 나비에서 운영하는 ‘타작마당’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빠띠 팀의 항해일지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전시 정보를 참고해주세요!

함께 항해일지를 실험해보고 싶다면?

조직에서 감정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는 항해일지. *혹시 같이 실험하며 만들어나가 보실 분들이 있을까요? *빠띠는 항해일지가 단지 전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문화를 만들고 싶은 조직들에서 실제로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all@parti.xyz 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빠띠의 항해일지 @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 전시
빠띠의 항해일지 @ 《네오토피아: 데이터와 휴머니티》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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