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한국의 대화 : 리디아와 로사의 낯선 만남 ‘우리의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데모스X
발행일 2023.11.02. 조회수 148

 

과거의 미지는 현재의 일상

우리 사회는 하루하루 순간순간 과거에는 ‘미지’였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미지가 현재의 일상이라는 가까운 개념보다는 여전히 두려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다름은 혐오의 이음동의어가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앎에 집착한다. 지식은 위계를 형성하고, 학벌은 권력이 되었다. 이처럼 굳고 단단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어렵고 불편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일과 관련하여 리서치를 하던 중 ‘한국의 대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책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더 중요하다는 믿음에서 오랜 시간 ‘연결과 공감’을 주제로 강연을 해왔던 터라 더 많이 관심이 갔다. 서로 다른 빛을 가진 별이 모여 무수히 빛나는 은하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우리의 대화가 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지어낼지 자못 궁금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이슈를 아우르는 10개의 설문을 온라인으로 응답하고 참가신청을 했다.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낯선 이와 1시간 동안의 대화라니, 게다가 50명의 집단이 한 공간에서? 미지를 탐사하는 실험에 가슴이 뛰었다. 참가 확정 문자를 받았을 때 새로운 항해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즐거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미지는 두려움이 아닌 설레임일 수도 있다.
 

관점은 달라도 본질이 닮았다

9월 23일 토요일 인사동으로 가는 길은 무척 날씨가 좋았다. 약속한 공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니 역시 비슷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느껴졌다. 진행자는 말랑한 ‘대화 가이드’와 서로를 돌보는  ‘함께 지킬 약속’으로 대화의 방식을 소개했다. 50여명의 참가자는 맞선 프로그램처럼 이름을 불리며 설문응답을 바탕으로 정해진  짝꿍을 만났고, 함께 장소를 이동하는 과정이 긴장감 마저 자아냈다.

오늘 만난 내 짝꿍 이름은 리디아, 나는 ‘로사’라고 소개했고, 서로 편하게 호칭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성별만 같을 뿐 우리는 다른 점이 많았다. 나이도 사는 지역도 그리고 공동의 주제에 대한  관점도. 하지만 독서, 춤 등 관심사가 비슷했다. (인연인가요)

우리는 ‘인공 지능 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될까?’라는 주제에 답변의 스케일이 달랐다. 나는 나의 관점이 집단의 신념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위협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녀는 단호하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우리 둘 다 기술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사회 공동의 이익보다 권력의 입장에서 활용하면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귀기울이다보니 응답은 달랐지만 사회가 안전해지길 바라는 본질은 닮았구나 알게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나’와 ‘우리’

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나뉜 질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연스럽게 서로가 가진 삶의 고민들이 꺼내졌다. 리디아는 친구들과 ‘할머니가 될수 있을까?’라는 얘기를 자주 나눈다고 했다. 기후변화, 국민연금 등 복지 제도의 변화 등 20대가 생각하는 미래는 무척 무겁고 불안했다. 나와 20년 가량 차이가 나는 낯선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슴이 움직였다. 글이나 화면이 아니라 직접 만나며 듣는 생생함과 간절함이었다. 들으면서 나의 문제에서 벗어나 확장되고 어우러졌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나는 ‘라떼는~’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1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우리는 눈빛이 보드라워졌고,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마주앉아 대화한다는 것은 다소 긴장되고, 어색하고, 이기고 지는 말들이 오갈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고작 1시간만에 그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나아가 서로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분명 ‘진화’였다. (에프터는 없습니다만)
이 시간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을 않을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도 없다. 하지만 다른 고민에 대한 진지한 ‘한 점의 이해’는 가지고 헤어져서 손해없는 이별이었다. 

프로그램을 발견한 호기심, 참여에 앞서 두근거림, 당일에 느낀 다양한 즐거움과 역동은 분명 이 사회에 새로운 파장과 온도, 에너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이 시간은 참가자 모두를 참가하기 전과는 다른 ‘나’를 만들었고, ‘너’라는 개념은 옅어졌다. 자연스레 ‘우리’로 호칭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호흡을 불어넣은 이 귀한 시도가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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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결과는 10월 11일 제 14회 아시아미래포럼 분과세션2 한국의대화 Korea Talk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권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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