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버터나이프크루는 어떻게 없어졌을까?

빠띠
발행일 2022-08-11 조회수 78

“청년 여러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버터나이프크루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연대와 박애의 정신으로 우리 사회의 소통과 포용이라는 행복을 나눠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22.06.30 버터나이프크루 출범식 격려사 중)

지난 6월 30일, 여성가족부 장관의 환영사와 함께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4기가 힘차게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4일밖에 지나지 않은 7월 4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SNS 글을 통해 ‘버터나이프크루’가 남녀갈등을 증폭시키고 특정 이념에 편향적으로 세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비난했고, ‘청년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다’던 여성가족부 장관은 사업 중단을 지시했습니다.

버터나이프크루 4기로 선정된 17개 팀은 출범식을 통해 멋지게 첫 발을 내딛었지만,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에서 약속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사업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통과 공감, 연대로 우리 사회의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려던 빠띠도 일시 멈춤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청년 팀들과 함께 했던 100일간의 이야기를 사업을 담당했던 빠띠 크루들이 함께 정리했습니다.

(2022. 4. 20.) 2달 간의 준비, 그리고 시작

2월 24일, 나라장터에 새로운 사업이 올라왔다. ‘2022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사업 운영’

‘오, 버터나이프크루!’ 반가운 그 이름을 보자 2019, 2020년도 협력 파트너로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103명의 청년들이 모여 주거, 성평등, 일자리, 건강 등 다양한 정책 제안을 공동작업으로 만들었던 1기 정책살롱. 그리고 성평등을 위한 23개 팀이 서로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던 2기 커뮤니티의 시간말이다.

▲ 버터나이프크루 슬로건

▲ 버터나이프크루 1기 정책살롱

이전 사업은 청년이 삶의 변화와 성평등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만들어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번에는 빠띠가 가진 강점인 시민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실행으로 이어졌고, 3월 부터 4월까지 2개월간 입찰 준비 기간을 가졌다. 그 과정 속에서 올해 버터나이프크루에서는, 청년 팀이 성평등을 주도하되 동료 청년, 시민들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평등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과정에 더 많은 사회 구성원이 참여하고 함께 경험함으로써 하나의 흐름이자, 문화로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그것이 점차 성평등, 젠더 이슈가 더욱 더 첨예해지고, 건강한 토론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사회에 필요한, 어쩌면 더 나은 문화를 만들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입찰 참여가 처음도 아닌데 왜 이리 떨리는지! 이번 사업을 잘 만들고 싶은 만큼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더니 제안 PPT가 무려 60장에 달했다.. 오 마이 갓. 사업 8개월 동안 도대체 뭘 얼마나 하려고.. (이후 제안 발표 15분 동안 랩을 했다는 슬픈 이야기..) 다사다난한 용역 입찰 참여와 경쟁PT였던 기술평가를 마치고 4월 20일, 여가부에서 연락을 받았다.

‘빠띠, 이번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대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열렸다. 청년이 주도하고 시민이 함께 만드는 성평등 문화. 드디어 시작이다!

(▲ 발표자료 맨 마지막 이번 사업을 대표하는 한마디. 우리는 청년이 주도하고 시민이 함께 만드는 성평등 문화를 꿈꾸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또륵.)

(2022. 5. 23.) 2022년 버터나이프크루를 공개합니다!

선정 이후 정신없이 시작되는 다른 사업들과 달리, 여가부 내부 인사 변동으로 버터나이프크루 시작을 미루냐 당기냐 정신없는 논의가 오갔다. 결론적으로 여가부의 요청은 원래 일정대로 진행. 사실 4월 중순에 선정이 되고 5월에 참여팀 모집 공고를 낸다는 것은 기적을 이루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이후 활동할 팀의 프로젝트 기간을 위해서, 또 아직은 알 수 없는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 와중에도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이번년도에 빠띠가 제안했던 ‘청년 주도의 성평등 프로젝트’에 ‘더 많은 시민의 공감과 참여를 통한 연대 확대’가 젠더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을 고민하던 여가부의 필요와 맞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또한 젠더 갈등, 일자리 등 청년들이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도 마련했고, 더 다양한 배경의 청년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역과 성별 가산점을 준비하기도 했다. 심사 기준도 더 많고 다양한 시민의 참여를 고려해야하는 ‘참여의 다양성 확보’, ‘프로그램 및 결과물의 확산성’ 등 활동이 팀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욱 확산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 기회가 더 많은 청년들에게 와닿을 수 있도록 전국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청년공간은 물론 청년과 관련된 다양한 커뮤니티(문화, 미디어, 데이터, 성평등 등)에 홍보를 진행했다. 그렇게 보낸 단체만 300여 개, 모집 게시물이 도달한 사람의 수만 17,000여 명이었다. 우리는 이 홍보로 사업 참여자 확보는 물론 참여하지 않는 시민에게도 ‘청년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구나!’ 라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었다. 함께 성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 홍보 진행 사진

그 결과 30여개의 프로젝트 참여팀이 정말 다양한 이슈들을 가지고 왔다. 생소한 과학기술학부터 스타트업, 성우 등 업계 내의 성평등,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시민 대상 워크숍부터 1인가구의 고립을 돌보는 마음돌봄까지... 청년의 삶에는 정말 다양한 이슈가 있고, 이들은 그것을 활동으로 만들 힘이 있는 주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니 도대체 어디서 시간과 에너지가 나서 이 활동을 하겠다는 걸까?’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원자라면 이런 걸 하겠다고 지원할 수 있을까? (응, 못해.) 요즘은 대학생도 직장인도 모두가 바쁜 사회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이들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렇게 모인 청년들이기에 심사와 선발이 쉽지 않았다. 최대한 이번년도 사업의 기조인 ‘시민참여와 성평등 문화 확산’을 함께 만들어나가볼 수 있는 팀들을 선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17팀이 2022년 버터나이프크루로 함께하게 되었다.

(2022. 6. 30.) 서로를 격려하던 그 날, 출범식

6월 30일. 우리의 시작을 알리는 출범식이 열렸다.두근두근. 크루들과는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청년 여러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버터나이프크루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연대와 박애의 정신으로 우리 사회의 소통과 포용이라는 행복을 나눠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김현숙 장관의 격려사로 출범식이 시작되었다. 출범식에서는 올 해 사업의 목표와 함께 서로를 알아가기로 했다. 참여한 청년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양 비가 정말 많이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웠고, 처음에는 크고 조용하기만 했던 행사장이 이내 화기애애해졌다.

‘정말 다양한 곳에서 청년들이 성평등을 만들어가고 있었구나, 얘기 들으면서 놀랐어요.’

‘다른 곳에선 이제 성평등 얘기는 그만 좀 하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여기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네요.’

‘저희의 미디어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요.’

이 날 모인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활동들이 하나, 하나 모여 어떤 변화를, 어떤 성평등 문화를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그렇게 시작했다.


(2022. 7. 4.) 출범식 3일 후, 누군가 우리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거 보셨어요?’

출범식을 마치고 돌아온 월요일 아침, 빠띠 활동가들이 인터넷 링크를 전달했다. 권성동 의원이 버터나이프크루에 대해 페이스북에 쓴 글이였다. 그 글의 내용인 즉슨.. 문화 개선은 프로젝트로 가능하지 않으니 명분을 내걸고 지원금을 받아가는 기존 시민단체와 같이 유사한 점은 없는지, 본 사업은 페미니즘에 경도되었으니 오히려 남녀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이야기였다.


(▲ 그 글을 본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짤)

글을 처음 접하고 화가 난다기 보단, 과연 지난 3년 그리고 올해 진행될 이 사업을 얼마나 알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까? 싶은 의문이 먼저 들었다. 먼저 지난 버터나이프크루에선 정말 많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정량적으로 보면, 62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 업계 내 성평등을 이야기했고, 또 누군가는 육아하는 엄마, 아빠들이 이야기할 창구가 필요해 프로젝트를 열었다.

물론 살펴보면, 사업 참여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았다. 하지만 성평등 이슈에 대해 일반적으로 여성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 그것은 ‘경도’된 것일까? 과연 ‘경도된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왜 여성들이 성평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정말’ 혹은 ‘아직’ 모르는 것일까?

그리고 청년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우리 사회의 문화를 만들 수 없다면, 그 즉시 멈추고 하지 말아야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 사회의 모든 시도들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말이다.

또 본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위해 어떤 수익을 낼 수 없었다. 인쇄되는 종이 한장까지 어떻게 썼는지 증빙해야 했다. 당연히 쓰지 못한 금액은 반납을 해야 했다. 과연 여기에 ‘지원금’, ‘받아간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건가. 청년들은 자신의 시간과 삶을 내어 남기는 것 없이 더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활동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의 글로 ‘명분을 내걸고 지원금을 받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쓰는 중에서도 마음 속에 그라데이션 분노가)

이 발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문제제기였을까. 무엇을 위해서. 혹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

(2022. 7. 5.) 멈춰주세요.

‘멈춰!🖐’

우리는 잘못된 일을 보았을 때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권성동 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이후,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전면 재검토’라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면재검토. 참여자 확정이 되고, 출범식까지 한 마당에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아니, 그게 가능한가? 장관님이 잘해보라고 격려하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인데?

‘아니, 심사랑 선발도 여가부랑 여태 같이 했는데…
지난 주엔 출범식에 장관님이 참여해서 격려의 말까지 했는데? 그건 아니겠지…
그렇게 되면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인 것 같은데. 이유가 없잖아. 혹시 그 글? 그것 때문에?’

그리고 여가부에서 연락이 왔다. 내부 검토 중인 사항이 있으니 사업비 지출을 멈춰달라고. 다음날 지급이 예정되어있던 1차 프로젝트 사업비는 프로젝트 팀들에게 가지 못했다. 이유를 물었으나 들을 수 없었다. 기사에서 말하는 ‘전면재검토’ 중 이라는 이야기도 없었다. 단지, 내부 검토 중인 사항이 있다는 말 뿐. 어떤 이유에서인지, 언제까지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청년들에게는 여가부 내부 사정으로 검토중인 내용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처음엔 사업비 지급 관련한 내부 이슈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사업 전면 재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기사 내용은 사실이었다.

(2022. 7. 6. - 7. 28.) 사업 중단이 되기까지

전면 재검토 이야기를 듣고 마냥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틈틈히 여가부에서는 자료를 요청했고 검토 결과를 묻는 질문엔 아직 정해진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사업이 무사히 순항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정말 그 글 때문이었을까? 근거도 미비해 보이는 그 글 하나에?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우린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빠띠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논의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이 아직 확실하게 중단되지 않은 상황에서 빠띠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향후 참여 청년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안을 논의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청년들이 주도하는 이 활동에 의미를 가졌고, 이들과 함께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 목적을 공유하며 함께한 청년 팀들에 대한 책임감, 도대체 우리가 이 시국, 상황에서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 그럼에도 무언가 해보고 싶고 해야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한 지인은 ‘너네가 그렇게까지 고민 해야할까?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을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했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건 우리의 목표와 지향과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 시간이 힘든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 청년들에게 상황을 공유하면서도 마치 앵무새가 된 양 ‘아직 전달받은 게 없네요. 무엇이든 전달 받게 되면 바로 공유드릴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청년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는 게 상황적으로도, 말로도 느껴졌다. 어떤 팀들은 계속되는 기자들의 연락에 생업을 이어나가기가 힘들 정도라고 했다. 홈페이지에 올린 합격팀 공지가 이렇게 쓰인다니. 아, 세상에나. 답답하고도 어려운 시간이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여가부 장관의 인터뷰 기사 내용이 눈에 띄었다.

‘(버터나이프크루를 통해 만난 청년들은) 내가 학교에서 본 평범한 2030세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달랐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출범식에서 그들을 격려했던 건 잊어버린 걸까? 왜 만난 곳에선 격려를, 만나지 않은 곳에선 달랐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권성동 의원의 말로 이미 크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저 발언은 우리를 분노시키고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참여 청년들과 이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청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단순히 당황했다, 난처하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내어 돈을 버는 것을 포기하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데, 최소한의 보호 없이 가해지는 ‘이런 사람’이더라 하는 혐오의 발언들.

그리고 실질적으로 닥친 사업의 위기가 정신적으로 힘들다. 우리가 하는 활동에 흔들림이 없음에도 회의감이 들 정도다.’

하, 이거 여가부 사업인데.. 단순히 부처 사업이 아니라 여가부가 주관하고 참여하는 청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는 사업인데, 이걸 이렇게 진행한다고?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우리는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그것도 사업을 함께해야 할 그 사람들에게 말이다.

(2022. 7. 21.) 팥 없는 찐빵도 찐빵일까

여가부에서 논의할 것이 있으니 미팅을 하자고 했다.

‘전면 재검토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앞으로 버터나이프크루라는 상징적인 이름은 사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성, 젠더, 성평등 관련한 프로젝트들도요.’

성평등 문화 추진단 사업에 성평등이 사라지고 더 이상 버터나이프크루가 버터나이프크루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상황일까.

왜 버터나이프크루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지. 왜 성평등과 여성, 젠더를 이야기할 수 없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부서가 들려준 이유는 남성참여자의 참여 저조. 기대보다 남성 참여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문제라고, 팀 선발 이후에 담당부서는 인식했으나 자신들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며 모두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려우니, 여성만이 아닌 남성과 여성이 함께 참여하는 팀이나, 성평등, 여성, 젠더갈등이 아닌 주제로 지금이라도 수정을 요청한다면 이에 응할 팀이 있을지,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어떨지 빠띠의 의견을 물었다.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물론 프로젝트 팀 중에는 여성이 주체가 되거나 여성을 주제로 하는 팀도 있었다. 하지만 남성 팀원들이 함께하는 팀도 적지 않았다. 남성 참가자 몇명이어야 괜찮거나 괜찮지 않은지 판단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모든 팀은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진행해야했기에 특정 성별만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성평등을 제외할 수 있을지 묻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빠띠는 ‘변화된 기조로 운영을 요청한다면, 응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혹시나 변경을 해서라도 참여하려는 팀이 있다면... 그것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여가부와의 프로젝트 기회가 남다른 의미를 갖는 팀들도 있을테고, 각자의 다른 사정을 확인해서 참가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고민이 되었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여 내용을 수정하면? 이렇게 참여하는 청년들이 지금과 같은 공격을 다시 받지 않을까? 여가부는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 찐빵엔 팥이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성평등 문화 추진엔 성평등이(읍읍))

(2022. 7. 22.) ‘제안’ 이라고요?

바로 다음날, 청년들을 만나 여러 상황과 여가부의 제안을 설명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전하고 싶지도,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이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하고 무례한지 알고 있으니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몇 번이나 글을 고쳐썼는지. 이 내용 작성하고 있는 내 자신의 상황이.. 참 말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청년들은 이 제안이 사업을 못하게 하려는 방법이 아니냐는, 성평등 문화 사업에서 성평등을 제외하는게 가능하냐는 반응이었다. 당연했다. 한 편으로는 수정한다면 얼만큼의 수정을 해야하는 것인지, 수정을 하면 안전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인지 묻는 이들도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이런 하나하나의 기회가 모두 소중하다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는 여성가족부에 명확한 수정 가이드를 요청하기로 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내부논의를 한 후 이야기를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가이드 대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2. 7. 28) 다시 들은 그 단어, 전면재검토. 그리고..

여가부의 답변은 ‘다시 전면재검토’였다. 두번째여서 였을까. 당황도 있었지만 초연한 마음도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 기다림과 무례함을 견뎌내야하는걸까 차가운 분노와 함께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번엔 기다림이 길지 않았다. 당일 다시 연락을 받았다. 결과는 사업 중단. 그렇게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은 4월 26일 계약, 5월 23일 모집 공고, 6월 20일 선정 팀 발표, 6월 30일의 출범식, 7월 5일 사업비 지급 중단 요청 이후 23일의 기다림 끝에 7월 28일 사업 중단을 통보 받았다.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버터나이프크루는 끝났다. 여가부 사업으로서는 말이다. 빠띠는 이 과정을 거치며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정당하지 않은 절차부터 정치인의 한 마디에 쉽게 흔들리는 정부 부처의 상황까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함께하는 청년들이 더 이상 말도 안되는 소문과 혐오 속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매 순간 신중을 기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우리는 청년들과 함께 버터나이프크루를 새로 써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겐 ‘경도’되어 보이는, 누군가에겐 ‘평범’해 보이지 않는 그 프로젝트를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협력하며 힘을 모으고, 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함께 써내려가보려 한다. 끝이 아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힘을 모아 사업비를 모으고, 중단됐던 각 팀의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고, 계약 관계가 아닌 협력의 관계로 사업을 진행해나가려 한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의 이 과정과 성과를 공유할 자리를 만들고 펀딩도 받아볼까 한다. 우리를 지지해준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를 사회에 더 많이 알려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간곡히 요청드린다. 우리의 이야기와 용기에 공감한다면 아낌없이 지지를 보내주시길 바란다. 그 응원으로 힘을 내서 이 지난한 과정을 완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이 끝났을 때,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며 함께했던 시간을 의미있게 반추할 수 있길 바란다.


여담) 그런데, 우리가 겪은 이 (혼란과 분노의) 일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언가가 바뀐다는 건 물론 큰 변화이고 그로 인해 변동되는 것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변화 이전에 함께 해나가기로 했던 사회적 약속과 맥락 또한 매우 중요하다. 무엇 하나 그냥 생긴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약속이 사라져버리는 변화는 과연 필요한 변화였을까?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변화일까.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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