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의 2018 여름방학 일기

빠띠
발행일 2019.10.20. 조회수 69

2주간 숨을 고르고, 여행하고, 요리하고, 책 읽고…

빠띠는 1년에 4주간 방학을 갖습니다.

빠띠는 여름(6–8월)과 겨울(12월-다음해 2월)사이 각각 2주간 방학을 보내고 옵니다. 빠띠 멤버들에게 ‘여름방학’은 열심히 달리고 들이키는 얼음물, ‘겨울방학’은 난롯불 앞에서 몸을 데우며 다가오는 봄을 희망차게 기다리는 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는 여름에도 어김없이 각자가 정한 기간에 2주간 쉼표를 찍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들의 여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기 빠띠 멤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 빠띠의 여름방학 계획)

우리의 여름방학

(먼저 보내고 온 순)

6/11–22

고즈넉히 동네 산책하다가
고즈넉히 동네 산책하다가

*<여름은 그곳에 남아>로 시작해서 <마녀 체력>을 지나 <아무튼 계속>으로 끝난 여름방학이었다. *일본의 부유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다룬 소설을 읽고, 주 5일 아침 6시 수영을 등록했으며(왜?), 아무튼 계속의 저자처럼 꾸준히 집안일을 했다(부러운 삶이었다). 가장 킥킥대며 읽은 책은 (소문대로) <아무튼 택시>였고, 가장 두꺼운 책은 <호모 데우스>, 가장 얇은 책은 <엄마는 페미니스트>였다. 사고 후회한 책은 <원칙>,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이었다.

자유한국당 시의원 후보(낙선함)의 지적에 따르면 ‘문화와 전통은 있는데 도서관이 없는 동네’에 사는 나는 동네에 있는 ‘큐레이션 서점’에서 이번 여름방학을 보냈다. 대부분의 책은 여기서 읽었다. 도서관이 없는 대신 서점을 도서관처럼 이용했달까. 물론 좌석을 이용할 땐 커피를 주문했고, 두 번 가면 한 권 정도는 샀다. (후회한다.) 탤런트 김나영 씨가 방송에서 소개해서 유명해진 이 서점에, 나는 따릉이를 타고 나지막이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다니곤 했다.

그리고 아내가 퇴근할 무렵만, 다시금 따릉이를 타고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고 브레이크만 살짝살짝 잡아주면서 내려왔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천’이였다는 그 길은 바람이 시원했다. 너무 좋은 나머지 ‘누가 나를 저 위로 올려다 주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기만 반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스키와 비슷하군,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키를 타본 적이 없다)

달리(dali kim) 6/18–29

‘달리맨'이라고 달리가 직접 썼을까…달리 알 방법이 없다
‘달리맨'이라고 달리가 직접 썼을까…달리 알 방법이 없다

온전히 몸으로 때운 보름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창고 수리에만 매달렸다.

매일 이런 식이다. 새벽에 일어나 지친 몸을 이끌고 작업실로 향한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에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못을 박고 톱질하고 합판을 나른다. 땀을 엄청나게 흘린 후라 점심밥이 안 먹힌다. 물에 말아 욱여넣어 본다. 잠깐 쉬었다가 오후 작업 돌입. 해가 길어진 만큼 길게 작업할 수 있다. 노을이 진다. 어두워져 작업이 힘들다. 도구들을 정리한다. 애들이 챙겨준 저녁밥을 먹고 맥주 한 잔 기울인다. 그러곤 곯아떨어진다. 정말 힘들긴 한데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졌다. 책 한 줄 안 읽었는데 마음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초록머리(조이성화) 6/25–7/6

이 사진을 찍느라 미쳐 순천역에 내리지 못했을까…
이 사진을 찍느라 미쳐 순천역에 내리지 못했을까…

[ 여행 ]
*방학 중에 누워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직 내일로 티켓을 살 수 있었고 무작정 사 들고 호남선 열차를 잡아탔다. *순천만의 초록이 그리워서 순천에 가려고 했는데, 자다가 순천역을 지나쳐 버렸다. *흑. 이만큼만 해야지 했는데 사실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봄, 여름의 나 같아서 너무 우스웠다. 그래서 더 가서 여수에서 지내기로 했고 마침 찐쩐이 생각나서 연락했다. 감사하게도 찐쩐이 맛집을 추천해 주었고 정말 맛있었다!!! *역시 여행은 먹으러 가는 거지…. 게장…. 너무 맛있었다.

*[ 독서 ]
*
예전부터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 벨 훅스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미뤄왔는데, YES24에서 중고 책을 엄청나게 싸게 팔길래(3,000원인가?) 샀다. 그래서 산 책 벨 훅스의 두 책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다 읽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두 책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며느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 덕분에 또 나는 언어를 얻었다. 계급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이 계급과 관련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선명하게 ‘계급의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계급이란 변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정도로 대신하고 말았지 정말로 내가 겪는 문제가 계급 때문임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여러 노력을 통해 지금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게 된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자 계급과 연대, 왜 우리는 계급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계급 문제와 연관되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초록머리의 여름방학 일기 [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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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sun 7/2–13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뛰어노는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날엔 그 어느 때보다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뛰어노는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날엔 그 어느 때보다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의 연속 ]
*
맑은 파란 하늘을 담은 사진을 남기고 싶어 잡아두었던 촬영 날에는 호우가 내려 촬영이 취소되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뛰어노는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날엔 그 어느 때보다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게다가 영화촬영 때문에 방학 일정을 잡았는데 영화촬영이 미뤄졌다. 또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방학의 시작이었던 주말에 많은 비가 내렸고 방학 내내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계속되었다. 결국 여행을 취소하고 거의 방학 내내 집에 있었다. 그리고 끌려가듯이 다녀온 장학생 워크숍에서 뜻하지 않은 에너지를 많이 얻고 돌아왔다.

[ 나를 챙기기 ]
그동안 먹고 싶었으나 비싸서 못 사 먹었던 요리나, 밖에서 혼자 사 먹기 힘든 요리들을 쭉 적어보았다.
이것저것 적어보다 부추전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항상 비가 오면 전이 먹고 싶어지는데 친구를 불러서 먹으러 가도 부추전은 잘 없고, 해물파전이나 감자전만 파는 경우가 많아 부추전을 안 먹은 지 거의 2년이 다 되었었다.

분명 요리 시작할 땐 기분이 좋았는데 요리가 생각대로 안 되니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었다. 그대로 거실에 조용히 앉았다. 평소 같으면 다운된 기분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무엇이든 했었을 것이다. 한껏 꾸미고 나간다거나, 친구에게 전화한다던가,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본다든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냥 그 감정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정말 조용히 다운된 기분으로 한 시간 정도를 앉아있었던 것 같다. 들리는 건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 거세게 내리는 빗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앉아있다 문득, 내가 왜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를 생각했다. 요리가 생각대로 안 되기 때문이었고, 요리를 하려 했던 이유와 요리를 시작할 때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선의 여름방학 일기 [더 읽기]

찐찐쩐 8/13–27

출처ㅣTumen Hobbel, FreedomxFest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들의 축제 Freedom x Fest(FxF) 2018에 다녀왔다. (FxF 후기는 다음 블로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스페인 피레네 산 중턱(이라고 하기엔 내겐 정상에 가까웠던 곳)에서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먼저, 캠핑. 정오엔 스페인의 강렬한 햇살로 텐트 안은 불가마가 되고, 자정엔 패딩 점퍼와 침낭을 입고서도 전해지는 추위와 싸워가며 잠을 청해야 했다. 어떤 날은 자다가 번개 불빛에, 당나귀 울음에 겨우 붙인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기도 했다. 야외 간이 샤워장과 화장실은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말 그대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이 구름을 보내면 비를 만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보내면 살을 태웠다. *텐트메이트(tentmate)였던 Anna와 나는 우리 인생을 통틀어 할 캠핑은 여기서 다 한 것 같다고, 알고 보면 우리는 도시 문명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며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 우리는 텐트 두 개를 치고 하나는 베드룸, 다른 하나는 드레스룸으로 만들어 지냈다)

빵빵한 WIFI도, 유로(euro)도, 따뜻한 샤워도 없던 이곳에 유일하게 있었던 것. 우리끼리 이것저것 사소한 불만을 털어놓아도 결국 이것 앞에서 무장해제 되어버렸던 것. 별. 하늘을 수놓은 정도가 아니라 별을 양동이째 엎질러 놓은 것 같았던 맑은 밤하늘을보며, 나는 경이로움 그 자체에 빠져버렸다. 미세먼지로 잠깐 창문을 열어놓는 것도 안심할 수 없었던 서울에서 살다가, 이렇게나 많은 별을 보다니….

금상첨화, 별천지를 지붕 삼아 리드미컬한 음악에 친구들과 춤추고, 와인 한잔 걸치며 인생을 이야기했던 그곳, 피레네 산에서의 밤은 앞으로도 자주 꺼내 보며 음미하고, 조용히 미소 짓게 될 것 같다.

끝.

글. 모두
편집. 찐찐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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