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노동이라 하지 못하는 독립러의 노동절

빠띠
발행일 2019.10.20. 조회수 70

2년 전 조직에서 나와서 ‘독립러’가 되었다. 독립러인 나는 노동자가 아닌데, 요즘은 그 어느 때 보다 노동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니 이상한 일이다. 노동자가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노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하소연하거나 투쟁할 대상자가 없다.

노동에 대한 고민은 아주 다채롭고 시시 때때로 올라와 나를 번민에 휩싸이게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는 홍길동처럼, 노동을 하는데 노동자가 아닌 나의 존재는 당혹스럽다. 만약 아래에 열거한 나의 고민을 당신도 하고 있다면, 아마 이 시대 노동계의 홍길동인 ‘독립러’일 지도 모른다.

직장을 그만뒀는데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지?
아주 자연스럽게 주말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일이 급해서, 밤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업무 연락에 자발적으로 답하는 나를 발견한다.
강의, 워크숍, 원고청탁 등 “시간되니?”로 시작되는 일 요청에는 갑이 원하는 일의 내용만 잔뜩 있을 뿐, 얼마의 돈을 언제까지 지급하는 등 노동 조건에 대해서는 일이 끝나야 겨우 들을 동 말동이다.
재밌어서 하는 일과 돈을 받아야 하는 일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일은 하는데 입금이 되지 않아서,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나에겐 사장이 없지만, 세상 모든 ‘갑’들이 내 사장 같다.
왜 ‘하고싶은 일’보다, ‘들어오니까 하는 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일을 요청할 때 갑질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공정한 ‘갑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어렵다. (계약은 어떻게? 수정 요청은 몇 번까지?)

독립러는 누구인가

내가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서, ‘독립러’라고 부르기로 했다. 주변에 돌아보니 나 같이 독립 활동가든, 독립 연구자든 조직을 벗어나서 일하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독립러가 프리랜서와 다르냐고 묻는다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독립러들 중에는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대신 자신을 백수, 알바, 대학원생, 그냥 노는 사람, 잉여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분명 워크숍, 행사 지원, 연구 보조 , 글 쓰는 일 등을 하고 있다. 그 일을 전업으로 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독립러 생활은 자기 인생에서 과도기로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노동의 조건이나 권리에 대해서 크게 주장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보며 ‘독립러는 프리랜서 중에도 진입 단계에 있는 사람들인가보다’고 생각했다(간헐적으로 일하든, 과도기에 일하든, 초보 단계이든 노동권은 응당 챙겨야 할테다. 그런데 그건 몹시 귀찮다.)

독립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수입이 줄어드는데도 독립러를 택한 바보들이다.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프리랜서라는 일하는 방식을 선택한 이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다. 기존 직업으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창조하는 이들도 있었고, 직장에선 못 해본 자기만의 작업을 해 보고 싶은 이들도 있다. 무얼 배우러 다니거나 갭이어(gap year)를 보내면서 자기가 할 일을 탐색하면서 간헐적으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내 주변엔 공익 단체나 기관, 중간지원조직 출신 독립러가 많다. 이렇게 설명하는 친구도 있다. “혁신적인 일을 하고 싶은 젊고 역량있는 활동가들이, 관료적이고 경직된 단체 시스템에서 갈 곳을 잃고 ‘유실’되어 독립러가 되고 있지 않느냐”고.

독립러 곽승희씨는 사회 변화 때문에 독립러가 많아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배운 게 다양한 우리가 설 수 있는 직업적인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점점 독립러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그렇기에 청년실업을 이야기하기 전에, 독립러를 위한 사회적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고.

독립러로서 나의 삶

나는 2년 전에 조직을 나와 독립러가 되었다. 독립러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에서 시간을 내가 컨트롤하고 싶어서였다. 독립러가 되니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직장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시키는 잡다한 일 보다는 집중하고 싶은 분야의 작업을 소신대로 할 수 있다. 조직에선 남의 일을 해주는 입장이었다면, 독립 후 좀 더 당사자 입장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점도 맘에 든다.

가장 큰 단점은 돈과 외로움이었다. 벌이가 줄어든 것은 예상했던 일이다. 줄어든만큼 덜 쓰고 대신 시간을 더 풍요롭게 쓰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수입보다 고통스러운 건 언제 입금이 될 지 모른다는 거였다.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워질 때마다 자존감이 낮아졌다.

외로움은 예상치 못한 큰 복병이었다. 종일 컴퓨터만 보고 앉아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예민하고 우울했다. 무엇보다 일을 논의할 동료가 없으니 ‘제대로 하고 있나’ 확신이 덜 서고,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기쁨이 그리워졌다.

차츰 독립러 생활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일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회사가 맺어주는 관계가 아니라 나와 ‘케미’가 맞는 좋은 동료를 스스로 찾아 일하는 즐거움이 크다.

종합하면,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독립러의 삶을 지속하는 이유는 시간이나 관계 등 생활 전반에서 ‘내가 주인된 삶을 좀 더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독립활동가의 시대

주변을 둘러보면 나 같은 사람들이 쉽게 보였다. 비슷한 처지였던 동료와 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모아보자”며 NPO지원센터 미트쉐어 프로그램으로 오프라인 모임과 빠띠에 ‘독립활동가의 시대’를 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몇 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빠띠 가입자가 생기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가 늘었다. ‘동료 고픈 당신, 커몽’이라는 문구가 사람들을 자석처럼 이끌었다고들 했다. 지금은 독립러가 아니지만 미래에 독립러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도 찾아왔다.

독립러들이 모여서 고충토로회도 열고, 이그나이트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궁금하고 신기해했다. 독립러로 사는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토로하게 됐다. 그러다가 어쩌다보니, 서울시의 프리랜서 정책 토론회에도 가서 독립러의 존재를 알리고 정책 제안까지 하게 됐다.

조직 밖의 노동자, 독립러

나는 독립러로 살다가, 처지가 비슷한 동료와 개인 사업자를 냈다. 명함도 파고 코워킹 사무실에 입주도 했다. 이제는 ‘대표님’ 소리를 들으니 자존감이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우린 사장인데, 이상하게도 사장같지 않았다. 왜?

조직을 벗어났더니 세상 모든 ‘갑’들이 우리의 사장이 된 것 같다. 조직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시키는 일을 대신 해 주는 인력임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시키는 일만 하기 싫어서 독립러가 됐는데, 어쩌다보니 들어오는 일만 하고 있다. 조직만 벗어난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월급과 4대보험을 내 주지 않아도 필요한 때 사용될 수 있는 인력. 이러려고 독립했나 자괴감이 들 만하다. “사장이 되었는데 왜 노동하는 것 같지?”의 답은 여기에 있었다.

요즘은 내가 만든 상품(서비스든 물건이든)을 정당한 돈을 받고 팔아보고 싶다. 시키는 노동을 돈 받고 해주는 인적 용역 말고, 시장에서 사장 노릇을 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다. 요즘 난 미치도록, 김밥이라도 말아 팔고 싶다(김밥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하지만 상품을 만드는 건 녹록치 않다. 먹고 살려면 들어오는 일을 꾸역꾸역 해도 모자라고, 그 일만 하다보면 내 상품은 개발하지 못한다. 굶든지 빚을 내야 한다. 독립러 모임에서는 “독립러들의 일감이 떨어지는 1–2월(행정의 예산 집행이 스톱되는 시기)에, 자기만의 창작활동을 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한편 “그 때는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데에 대한 조바심이 나서, 자기 작업이 손에 안 잡힌다”고들 했다. 모두들 핵공감을 했다.

독립러의 노동이란 노동이 아닌 듯 한데 노동. 어찌 해야 하나? 답은 두 가지다. 노동을 안 하던가, 노동을 노동답게 하던가. 노동 대신 자기 상품을 개발할 여건이 좀 마련이 되던가(땡빚을 내는 자력이든, 사회적 지원을 받는 조력이든). 또는, 독립러의 노동이 노동임을 인정하고 노동 권리를 악착같이 챙기는 거다.

독립러의 노동절

독립러의 노동을 챙기는 방법은 무척 많을텐데,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강의, 디자인, 원고 작성 같이 소액으로 일회성 이뤄지는 계약은 대부분 구두로만 이뤄지는데, 의뢰 과정에서 얼마의 금액을 언제까지 지급하는지, 작업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작업결과의 귀속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은 거의 논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어보고 싶지만, 돈 얘기하면 ‘없어 보일까봐’ 새가슴에 묻지도 못한다.) 이런 5만원, 10만원, 30만원 같이 소액의 작업이라도, 들어갈 내용은 들어간 ‘간이 계약서’를 쓰면 어떨까? 물론 갑이 먼저 제안할 리 없으니 우리라도 먼저 디밀어 봅시다. 일의 내용만 의뢰하는 갑에게 “이런 게 있어요. 이거 작성하고 시작합시다.”라고.

빠띠와 나(듣는연구소)는 이 글을 작성하는 원고 청탁을 진행하면서 이런 계약에 적용할 수 있는 간이계약서를 만들었다. 우리의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서 온라인에 게시하고 누구든 작성한 코멘트를 받아서 계약서를 확정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SNS에서 반응이 뜨거웠는데, 이 기세를 몰아서 원고청탁 뿐 아니라 디자인, 강의용 간이계약서 양식 만들기도 해 볼 예정이다. 집단지성으로 만든 양식을 독립러들이 계약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법적 검토도 받아보려 한다.

아. 곧 노동절이다. 공산당선언 서문 첫 구절이 떠오른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나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유령이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독립러라는 유령이.”

내 주변에만 독립러가 이렇게 많은가? 아니면 정말로 독립러의 발생은 새로운 현상일까? 앞으로 높은 실업이 이어지고, 장차 기본소득의 시대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온다는데 독립러의 발생은 늘어날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독립러일까? 궁금하다.

당신도 궁금하다면, 독립활동가의 시대로 오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