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정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기관이라면,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2017년 2월 9일.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서울시청 근처로 두 공무원을 찾아갔습니다. 설 직후라 조용했던 서울시청 근처, 저는 그날 처음 본 분들에게 “담당 공무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여러 필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서 무리하지 않으시면 좋겠네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올해 말까지 시범사업을 끌어온 ‘민주주의 서울’의 첫 미팅 자리였습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던 그 당시 빠띠가 해 왔던 사업이나 빠띠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로 “시민이 자발적으로 자기 조직화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누군가 시민을 불러모아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미묘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빠띠는 ‘시민의 자기 조직화’에 집중하며 우주당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빠띠가 직접 하는 사업과는 별개로 우리가 만나는 분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이 실현되는데 필요한 게 무언지 고민해 주고 함께 답을 찾아보는 일도 자주 하고 있었죠. 그러나 탄핵 정국에서 기관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는 팀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전에도 몇 년간 서울시의 다른 담당자들을 서너 차례 만나긴 했었습니다. 처음엔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였고, 이후엔 ‘디사이드 마드리드 같은 것을 서울시에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였어요. 아래에 나눌 이야기를 똑같이 해드렸지만, 이야기한 내용 중 부분 부분만이 떠돌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영팀을 구성하고 운영팀이 “애자일 방식이나 MVP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애자일”이 한동안 서울시 내에 회자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설 직후 미팅에서 만났던 분들은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된 분들로, 실제로 그 업무를 직접 다루고 있는 분들이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상명하달로 주어진 업무여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맡게 될 업무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시로 옮겨온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아직 발령을 기다리는 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에 간단히 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늘 하던 답, 지난 몇 년간 제가 서울시 다른 담당자들에게 말씀드렸던 이야기를 우선 그대로 해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아직 온라인상에서든 오프라인상에서든 시민들의 단순 제안이나 청원을 넘어, 참여와 토론, 권한을 어떻게 위임할지 연구가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팀을 만들고, 그 팀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팀의 구성원은 외부 전문가와 내부 공무원이 섞여 있는 게 좋고, 외부 전문가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결과로 나오는 디지털 플랫폼은 반드시 최대한 간단해야 합니다. 고민과 노력이 깊을수록 플랫폼이 간단해지는 것이지, 간단한 걸 따라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2. 민주주의 플랫폼이든 시민참여플랫폼이든 이 플랫폼을 통해서 어떤 효용이 있을지를 시민들이 믿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의 최고 책임자가 정무적인 역량과 동시에 시 내부 체계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 권한은 상징적이어도 괜찮지만, 필요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시장 주도로 하거나, 부시장이 주도하거나, 혹은 시장이 외부 전문가에게 1번의 조직을 만들며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3. 어떤 플랫폼이나 정책이든 초반에 열광하며 믿고 참여하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물론 새로운 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큰 기업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만 이 일에 애를 먹는 게 대부분입니다. 초기에 선출직 리더를 지지하는 기반이 탄탄하다면 이 기반을 활용해서 시민과의 소통, 협력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입장이 강화되더라도 그 부작용을 관리하면서 나가는 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니 현재 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얼마나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 조건입니다.

요약하면 1) 전문성을 가지고 답을 찾아갈 권한을 위임받은 운영팀, 2) 팀을 이끌거나 혹은 단단하게 지원해 주는 권한을 가진 책임자, 그리고 3) 초기에 시정을 지지해주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 사실 세 번째만 있어도 초기 흥행은 성공합니다만,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없으면 2년 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며 지지자들이 실망하며 돌아섭니다. 그 틈을 타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진영에서 정책이 소용이 없다거나, 무책임하다거나, 부작용이 심하다는 공격이 들어오게 된다고도 말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게 여러 가지 더 있지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성공합니다”라는 정답은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기관이라면, 위의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과 전문가를 섞은 팀을 만드는 방식도 경직되어 있어서, 지금은 1번의 운영팀을 내부의 의지를 가진 담당 공무원들과 외부의 전문가팀, 두 개로 나누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탄핵 정국, 그리고 박 시장님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서울시에 갓 배정받은 두 공무원, 거의 다 망가진 상태였던 천만상상 오아시스, 여기에 갑자기 높아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기대감이 무색하게 실험도 고민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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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넘어야 할 조건을 논의하고 난 후 “너무 고생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권한 밖에서 준비되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끝이 났다면 지금 민주주의 서울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 후 얼마 뒤에 저는 다시 연락을 받게 되고, 그로부터 다시 반년 뒤 ‘민주주의 서울’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함께 만들게 됩니다.

Originally published at oasis5.net on Decembe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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