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2020년은 어떤 해였나요? 열이면 아홉 이상의 분이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었다’고 답하실 것 같은데요. 빠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는데요. 빠띠의 2020년 한 해를 돌아보았습니다.

[2020년 회고 ① 실시간공론장팀] ‘진짜’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디테일들

누구나 충분히 알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과정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상인 한편 모두가 함께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활자인쇄나, 인터넷 같은 기술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라는 기술도 헌법부터 정치체제,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 문화와 지역사회까지 우리 삶에 촘촘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계속 진화 중입니다. 때로는 발명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요.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는 이런 민주주의 기술을 향상하기 위한 방법들을 만들고 실험하고 개선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온라인으로 이용 가능한 의사결정 툴을 만들거나, 공론장과 커뮤니티를 위한 민주주의 플랫폼을 개발하기도 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 곳들과 협업을 통해 사례를 만들어 확산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될 다섯 편의 글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 그리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단체 빠띠의 네 팀이 ― 공론화팀, 카누팀, 공론장팀, 데이터본부 ― 2020년 지난 한 해 어떤 일들을 해왔고 또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소개하는 글입니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개인도 쉽게 대량의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의사결정의 시공간도 유연해진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향상된 기술에 비례해 더 많은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까요? 빠띠의 활동에서 만들어진 장면들이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지난해 탄생한 실시간공론장팀의 활동으로 시작합니다.

비대면 시민참여 공론장, 해보니까 되네

지난해 봄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 될 조짐 속에 대면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빠띠의 디지털 민주주의 도구들, 특히 실시간 의사결정 플랫폼인 빠띠 타운홀의 이용률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이에 2020년 5월 타운홀 플랫폼을 관리하고 활용하며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한 타운홀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내 타운홀이라는 의사결정 도구에 집중할 뿐 아니라 만남의 감소가 숙의 공간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민들 간 관계와 연결을 유지하는 일 전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타운홀팀은 공론화팀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혔고, 2021년의 목표를 정리하며 ‘실시간공론장팀’으로 좀 더 뾰족하게 정체화했습니다.

100% 온라인 전환, 국민 참여단의 심사로 진행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굿아이디어 공모전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은 공공 영역과 시민들 간의 소통을 중지시켰습니다. 방역에 책임이 있는 정부 산하 기관들은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지요. 실시간공론장팀의 첫해는 주로 이 소통을 안전하게 재개하기 위한 도전의 연속으로 채워졌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청년불평등완화범사회적대화기구와 같이 특정 주제에 시민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기관들과 동대문구마을자치센터,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 영등포문화재단 같이 민과 관을 잇는 중간지원조직들, 구로구처럼 주민들의 의견을 내년 계획에 반영하고자 하는 지자체까지 다양한 공공의 파트너들과 비대면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레퍼런스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프런티어가 된 상황이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웠어요.” 무사히 작년의 도전을 마무리한 지금, 찐쩐 활동가는 회고합니다. 기왕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코로나 이전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어보자. 시민들이 새로운 디지털 툴을 꺼리고, 비대면 행사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를 보이는 파트너들도 있었지만, 실시간공론장팀의 리더인 쇼니 활동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시민들은 (주최 측의) 생각보다 항상 한발 더 나아가 있어요.” 그는 기존에 시민참여 공론장을 만들었던 경험에 기반해, 비대면 상황에서도 시민들에게 사전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시간과 권한을 주면 충분히 참여가 일어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이게 될 지 몰랐는데 해보니까 되더라”는 체인 활동가의 말처럼 현장 결과는 우려와 달랐습니다. 시민들은 어플을 설치하거나 가입하지 않고 URL에 접속해 바로 사용가능한 빠띠 타운홀에 쉽게 접근했고 제안, 투표, 배틀, 응원 등 실시간 상호작용 기능을 통해 바로바로 공론에 참여하며 행사에 집중했습니다. 한 시니어 시민은 소수가 발언권을 독점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다는 피드백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평소 가게를 비울 수 없는 자영업 종사자라 주로 낮 시간대에 열리는 기존 공론장에 참여가 어려웠던 한 시민은 이번 기회에 주문도 받고 배달도 하는 틈틈이 온라인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면서 일하는 사람의 공론장 접근성이 더 높아진 순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지요.

일하면서도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

대면, 비대면 중 무엇이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에 상관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양질의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죠. 빠띠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오프라인 행사에서 양육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아이와 함께 참여하거나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고, 온라인으로 중계하여 개방성과 접근성을 넓히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오프라인 공론장에 결합되어 쓰여왔던 빠띠 타운홀과 믹스는 전체 비대면으로 진행된 온라인 공론장에서도 유효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된 것은 아닙니다. 빠띠 활동가들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사전에 공론장 전체 과정과 플랫폼 이용 방법을 상세히 안내하는 메일을 보냈고, 온라인으로 미리 의견을 수집하고 과정을 아카이빙하여 논의가 진전되도록 촉진했습니다. 시민이 제안하고 토론하고 결정하거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결과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충분히 절차와 정보를 설명하기 위한 온라인 사전 OT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마침내 모두가 공론장에 모였을 때 공통의 이해에 기반해 양질의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말이죠.


플랫폼 노동 건강 아이디어톤 현장(위), '빠띠 타운홀'을 활용해 시민 참여 심사로 진행된 우수아이디어 선정(아래)

정부 기관들만 빠띠 실시간공론장팀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연구하는 연세대학교 윤진하 교수 연구팀과 함께 플랫폼 노동 건강 아이디어톤을 진행하면서는 연구자와 현장 이해관계자, 시민들을 연결했고, 여러 당사자들의 의견을 미리 영상으로 담아 시민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이전이면 현장 발제로 함께 했을테지만 상황에 맞춰 매체를 변화했을 뿐 공론장에 충분히 다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원칙은 같았습니다. 아이디어톤은 참가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진행 과정을 공유했기에 일을 쉴 수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도 온라인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연구와 현장이 괴리되지 않은 솔루션들이 도출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분리시켰지만, 대신 더 많은 ‘동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투표와 제안, 박수 등 온라인 공간에 동시에 보여질 수 있는 실시간의사결정을 모더레이션 하는 기술이 공론장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시민단체나 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체를 위한 ‘온라인 총회 툴킷’과 교육도 실시간공론장팀의 중요한 미션이었습니다. 빠띠가 만들고 시도하는 민주주의 기술들은 시민 모두의 것이고, 시민사회의 활력은 민주주의의 질과 양 모두에 직결되는 요소니까요. 공론화팀의 ‘온라인 총회 툴킷’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디지털 툴 사용법을 알리는 것을 넘어 형식적인 정족수 채우기 의례가 되어버리기 쉬운 총회의 의미를 재학습하게 됩니다. 안건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과정부터 투표, 토론 등 다양한 의사결정의 방법, 그리고 충실하고 투명한 기록까지. 툴킷은 비단 온라인이 아니더라도 좋은 총회는 어떻게 준비될 수 있는지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어도 필요한 도구이지요.

공론화는 과정을 만드는 과정

2020년 빠띠 실시간공론장팀이 만난 주제는 마을 활동부터 젠더 이슈, 청년 세대 불평등, 플랫폼 노동까지 다양합니다. 공론장의 형식도 회의, 포럼, 아이디어톤 등 규모와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팀이 출범한 첫해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실행할 수 있었던 힘은 빠띠의 유연한 온·오프라인 도구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실시간공론장팀이 과정에 몰입하기를 두려워 않는 팀이기 때문입니다. 쇼니, 찐쩐, 체인 활동가는 입을 모아 실시간공론장팀이 만드는 “공론’화’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설계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밀실의 의사결정을 공론의 장에 개방하는 과정도, 사각지대의 문제를 가시화하여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과정도, 방향에 상관없이 모두 실시간공론장팀의 일입니다. 이 과정이 모두를 위한 결과로 이어지도록 현장과 정책 의사결정자, 전문가, 시민들 사이에 대화와 정보공유, 토론과 의사결정 등 상황에 가장 적절한 연결고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지요. 시민들이 같은 시간, 온·오프라인 어디든 한 공간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실시간 공론장이 필요하다면 형식과 주제에 상관없이 소화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평행선이 아니라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공론장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서 말이지요.

결과물보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일하다 보니 실시간공론장팀은 협업 파트너들과 많이 대화하고 팀의 전문성을 공유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빠띠가 추구하는 더 나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는 협업을 통해 확산되므로 이는 당연한 태도일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또 지역사회나 온라인 등 내 삶의 공간에서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데 출발선도 종착지도 알 수 없나요? 바로 그 과정부터 함께 시도해보자고 하는 팀이 있습니다. 과정을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함께 변화되어 어느새 모릅니다. (끝)

이어서 읽기

  1. [2020년 회고 ①실시간공론장팀] ‘진짜’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디테일들
  2. [2020년 회고 ② 카누팀] 자유롭고 안전한 커뮤니티들의 사회
  3. [2020년 회고 ③ 공론장팀] 변화는 혼자서 단숨에 만들 수 없으니까
  4. [2020년 회고 ④ 데이터본부] 데이터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면
  5. [2020년 회고 ⑤ 빠띠] 오늘의 민주주의 얼마나 나아졌나요?

글 | 백희원 decembre.hw@gmail.com
편집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활동가 찐쩐 gj@parti.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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